나의 독후감

2021. 1.27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추천★

YoNa,K 2021. 1. 28. 21:46

그냥, 사람

14쪽. '다시는 저렇게 살 수 없겠구나.'
 내가 여기까지 타고 왔던 기차가 나를 내려놓고 저만치 떠나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낯선 역에 앉아 있었고 떠나는 기차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그것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 타고 있었을 땐 내가 무엇을 타고 있었는지 몰랐던 그 기차가, 말하자면 청춘이었을 거다. 

26쪽.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 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 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47쪽. 만날 때마다 낄낄대며 타박했던 그가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의 죽음이 적나라하게 깨우쳐주던 밤, 후회인지 그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79쪽. 사람들은 강자가 사라져야 약자가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나는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그것은 혹시 우리를 버려서가 아닌가.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상처 난 곳으로 온갖 악한 것들이 꿀처럼 스며드는 법이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생명을 포기하는 곳, 연대가 끊어지는 그 모든 곳이 시설이다. 그러니 모두들, 탈시설에 연대하라.

80쪽. 그 적나라한 대비 앞에서 나는 조금 멍해졌다. 두 개의 공지가 선명하게 일깨운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와 '장애인은 탑승 할 수 없는 버스'는 하나의 버스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타게 될 그 버스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휠체어 탄 누군가를 플랫폼에 남겨두고 혼자만 버스에 올라 타야하는 사람의 기분이 되었다.

109쪽. 특수안경을 쓰면 보이는 가상현실처럼 자녀가 장애를 입는 순간 그녀들 앞에 놀라운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처에서 엄마의 무릎을 꿇린다. 그러나 설마 이들 앞에만 유별나게 나쁜 사람들이 득실거리겠는가.

143쪽. 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156쪽. 인숙은 항상 딸과 떨어져서 걸었다고 했다. 딸과 나란히 걷다 딸의 친구들과 마주친다면 딸에게 난처한 일이 생길 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제가 항상 뒤에서 걸었어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제 눈앞에 있어야 안심이 됐어요."
 인숙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가 딸을 지키기 위해 유지해야 했던 거리는 몇 미터쯤 되었을까. 다리 아픈 엄마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며 천천히 걸었을 인숙의 딸과 그런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종종걸음을 쳤을 인숙 사이의 거리가 너무 애달파서 가슴이 시렸다.

158쪽. 딸이 스무 살이 되자 인숙이 받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절반으로 줄었고, 딸이 알바를 해서 돈을 버니 인숙의 기초생활수급비가 삭감되었다. 인숙의 가난과 장애에 대한 부양 책임을 딸에게 넘기려는 정부의 지침이었다.

165쪽. 건물은 부수고 재건축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한번 부수어지면 회복되기 어려운 존재라는 걸 그가 죽음으로 말하고 있다. '박준경의 길'을 따라 걸으며 '여기 사람이 있다'는 오랜 구호를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의 청춘과 삶을 느끼고 싶어 찾아간 길이었는데, 가난했던 청춘이 당한 처참한 모욕과 죽음만 보았다. '거기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거기, 사람이, 있었다.

206쪽. 알을 낳는 게 목적인 산란계(닭)의 경우 쓸모가 없는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거대한 칼날이 24시간 돌아가는 분쇄기에 넣어 비료로 만든다거나, 새끼를 낳는게 목적인 종돈(돼지)의 경우 평생 동안 '스톨'이라는 형틀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 채 강간과 임신, 출산을 반복하다가 '회전율'이 떨어지면 햄버거 패티 같은 분쇄육이 된다는 것. 

213쪽.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225쪽.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랐는데,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 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일주일, 열흘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송아지를 팔았던 우리 삼촌이 그다음 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습니다. 저 소는 왜 우냐고 타박하는 이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입니다. 유가족 여러분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여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머릿속에 책 전체를 입력하고 틈 날때마다 들추어 보고 싶다

나는 많이 이해하고 알고 함께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올해 선물을 하게 될 일이 있다면 이 책으로 하게 될 것이다